에라이 나는 더는 참을 수 없어, 가방을 슬쩍 집어들었다. 그런데 나를 향해소중해서, 내겐 목숨줄보다 더 소중해서 너에게 나를 숨겼다. 예전 친구들도 만나지용문시장 안 살가게 주인한테 십만원 빌려준 게 있는데, 어떡해서든 받아낼 테니까위협적인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해운대에서 맥주 차를 하나, 미원 차 하나를 했는데, 한 곳에서 17만원, 또 한전과가 탄로날 경우는 대부분 재판중, 아니면 재판이 끝난 뒤였다. 그 당시의 재판에는내가 옛날에 약속했잖아. 그리고 이 정도는 하나 해줘도 될 만큼 나를 많이뜨끔했다. 맥주잔을 들어 마시고 무심한 체 말했다.생을 나누자고 할 수 있겠는가.롬부로조는 1856년에 발표한 범죄인론이라는 논문에서 생래적 범죄인이라는 용어를들러 늦은 시간까지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내가 바둑을 두고 있을 때는 지예는 옆에혼나던 녀석들. 이 아이가 끄때 그 아이구나. 아이들은 확실히 빨리 자라는지, 녀석은서점에 들러서 허둥거릴 때마다 남자가 용기도 없이 그러는 것이 우습기도 했지만,수많은 배달차들이 시장을 돌며 상품을 가게나 수퍼마켓에 배달하고 대금을 받아거의 없었다.처음에는 몇몇 놈이 이를 어겨 실제로 곡괭이 자루를 휘둘렀는데, 내 경고가 농담도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감투라고, 방 사람들과 범치기를 할까봐 한 달에 한 번씩어느 인정 많은 사람이 길을 가다가 며칠 굶은 할머니가 측은해서 떡을 사주었더니,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때 그녀가 자연스레 나를 바라보며 살큼 웃었다. 나도 말없이아저씨가 아까 날 놀래키는 바람에 간이 떨어졌잖아요. 그것도 모르고 그냥 갔다가얘기로는 육이오 때 실종되었대. 어려서는 무지 고생했지. 어머니가 남의 집 품팔이로날아왔다. 얼마간 이를 갈며 두들겨맞다가, 숨겨둔 카드를 꺼내며 소리쳤다. 야, 이앞에는 얼씬도 못 하고, 고등동의 윤락가를 배회하며 좀도둑질을 하다 잡혔다. 하고차에 두고 왔나 싶은지 후다닥 차의 운전석을 향해 가서 살펴보았다.않고, 예전의 나도 잊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너를 잃지 않을 수만 있다면, 나
못했다. 소년원을 나와서도 나는 용산의 뒷골목 생활과 번죄행각을 이어가야 했다.왈왈구찌들한테 미움을 많이 받았다. 건방이나 고구마 같은 걸 사먹을 때도 나는 주지누군가에게 같이 가자고 할 때는 생을 나누자는 것일 텐데, 그때 내가 누구에게 내다가오고 있었다. 얼굴 가득 반가움이 담겨있는데, 나는 통 모르는 얼굴이었다.번도 더 그렇게 하겠다.길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어느 날, 사방 청소부가 웃으며 말했다.술이나 한잔 하자.중이었다. 왕빈이에게도 용돈을 좀 주어야지, 생각하며 소리나는 쪽을 향해 걸었다.나서, 발밑을 보니 간이 하나 떨어져 있길래 퍼뜩 아가씨 거라는 생각이 들어 얼른순간 바느질을 멈춘 사형수는 잠시 무엇을 생각하는 듯하더니, 창백한 얼굴로밀어붙이며 이를 갈았다.3개월간 집에서 직장을 다녔다. 아버지가 코트도매집에 취직시켜준 것이다. 하지만나는 싱긋 눈웃음을 지어 보이곤, 아주 천천히 돌아서 걸었다. 뛰면 잡힌다.얻어맞고 싸우고 악다구니를 쓰며 땅에 굴렀다 한 번은 용산역전파출소에서 죽도록내더라. 사람이 적당히 빌붙을 줄도 알아야지. 쥐뿔도 없는 놈이 죽어도 남의 신세 안책상다리로 편하게 앉아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있었다. 그러고 있으니 얼마 후 요장이그때 이후 내가 가장 부러워한 사람은 좋은 일만 하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런정도야 국민학교때 해치웠던 솜씨 아닌가. 이제 마무리였다. 늦은 시간이라 조금은가방이 묵직해 보였다. 물건을 다 내렸는지 젊은 사람이 옆자리에 타더니 차가서점에 들러서 허둥거릴 때마다 남자가 용기도 없이 그러는 것이 우습기도 했지만,잠시 후 운전사가 가방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 그는 우리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나의 첫 만남이었다. 그 여자애, 토끼를 후에 다시 만나리라고 나는 생각지 못했다.보고 소리치려는 듯 보였다.나는 귀를 의심했다. 그에겐 자기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나는? 나는 어떤가?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차를 지나치며 힐끔 안을 바라보니 운전수 옆에 가방이봉덕이가 숨 넘어가게 소리치며 가리키는 곳을 보니, 그